한국 농업과 무역 (WTO, GATT, DDA, FTA)
본 글은 한국전쟁 종료 후 GATT, WTO 및 FTA를 비롯한 세계 무역 과정에서 농업 해체 및 농산물 개방을 막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 과정, 그리고 농민투쟁의 내적 의미를 여러 자료와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주요 참고 자료 : 한국의농업정책_김병택 지음, 희망으로 가는 길_전국농민회총연맹
[우르과이 라운드 이전 농업 무역]
한국전쟁 종료 후 농산물의 수출액은 1956년 15%였으나 1961년에 26.7%로 증가했다. 그러나 당시 농업구조로는 식량을 자급하지 못했다. 1956년 미국에서 잉여농산물이 도입면서 식량가격을 안전화시켰으나 국내농산물 가격을 국제가격 수준 이하로 억제함으로써 국내 농업기반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우리 경제는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1962년 총수출액 대비 36.1%였던 농산물 비중이 1976년에는 2.3%로 대폭 축소한 반면 농산물 수입액은 급증했다. 1978년 정부는 수입자유화 기본방침을 정하고 농산물에 대한 수입자유화를 강행함으로써 1978년 58%였던 농수산물 수입자유화 비율은 1982년에는 75%로 확대되었다.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
한국은 1986년부터 무역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이는 통상마찰로 이어졌고 1989년에는 GATT BOP(국제수지 적자국에 농수산물 등의 수입규제를 허용)항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6년 9월 세계무역 질서를 재편하고자하는 목적으로 GATT체제하의 제 8차 다자간 무역협상이 개시되었다(UR 협상). UR 협상은 7년의 협의과정을 거쳐 1993년 12월 타결이 되었다. 그리고 1995년 1월 WTO체계가 출범되었다.
UR협상 결과 모든 농산물의 관세화라는 원칙과 함께 선진국의 경우 평균적으로 95년~2000년까지 6년 동안 관세의 36%를, 개도국은 24%를 감축하도록 했다. 개별 농산물에 대한 최소감축률은 선진국은 15%를 개도국은 10%를 적용했다. 이행기간도 선진국은 95~2000년까지 6년간을, 개도국은 95~2004년까지 10년간으로 설정했다.
우리나라는 협상결과 수출국의 시장접근을 위해 저율관세로 최소시장접근(MMA) 및 현행시장접근(CMA)을 허용했다. 쌀의 경우 10년간 관세화를 유예받는 대신 최소시장접근방식(MMA)으로 일정물량을 의무수입키로 했다. 즉 초기년도인 95년에는 기준년도 국내소비량의 1%에서 시작해 최종연도인 2004년에는 4%까지 수입량을 늘리는 것. 그리고 이행기간이 종료되는 2004년에 관세화 유예 연장여부에 관한 재협상을 시작하고 당해 연도에 끝내기로 했다. 이후 2004년 12월에 관세화 유예기간을 10년 연장하고 이행기간 만료 후 자동 관세화 이행에 합의했다. 그리고 쌀 TRQ는 4%에서 출발해 매년 증량하고, 수입할당량의 일정 비율을 시장에 판매해야 하는 시판의무를 부여 했다. 이러한 일련의 협정으로 농산물 수입이 폭증하게 되었고 국내 농업 기반은 악화되었다.
UR협상의 최대 쟁점은 기초농산물에 대한 수입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쌀 시장 개방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는 쌀이 우리 농업에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과 기초식량으로서의 중요성때문이었다.
1990년 4월 24일 결성된 전농은 전국 농민단체들과 함께 ‘우르과이라운드협상거부 범국민 공동대책위’를 결성하고정부에 대하여 15개 비교역적 품목의 고수, 쌀시장 개방불가를 요구하며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92년 정부가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에 대한 수입을 허용하자 전농은 농협과 함께 쌀 수입 개방반대 천만인 서면운동을 벌였으며 전국민의 31%인 13,078,935명이 서명을 하였다.
93년 12월 5일 쌀 시장 개방이 결정되자 12월 7일 3만여명이 모여 서울역 광장에서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 저지 범국민대회”를 열었으며, 94년 2월에는 최소한의 농업보호대책도 없이 WTO가입비준을 강행 처리하려는 것에 분노한 농민 4만여명이 모여 재협상을 요구하였다. 또한 94년 2월에는 UR협상를 반대하는 건국 이래 가장 큰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UR 협상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WTO 비준을 막아내지 못했고 이후 농산물 수입급증으로 식량자급률은 급속히 하락했다. 이후 농업은 가격폭락, 농가부채 증가로 악순환을 거듭했고 농가인구가 감소되었고 농민은 사회적 약자로 전락했다.

[DDA 협상]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는 제4차 각료회의에서 도하개발아젠다 협상 (DDA : Doha Development Agenda) 을 출범시켰다. DDA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후 시작된 9차 다자간 무역협상이며, WTO 출범 이후 첫 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앞선 협상들과 달리 개도국의 개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개도국들의 주장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협상의 계획은 2005년 이전에 협상을 일괄타결방식이라는 방식으로 종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개도국과 선진국 간 농업과 비농산물 시장 접근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협상이 중단되기도 했다.
2022년 12차 각료회의에서 백신 불평등·식량위기 확산에 대한 WTO 차원의 대응방안 제시, 다자무역협상 지속을 위한 합의 도출, 수산보조금을 내용으로 하는 제네바 패키지를 도출되었다. 그러나 제네바 패키지는 WTO 다자무역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을 충족한 것으로 농산물에 대한 수입국과 수출국의 대립, 공산품 시장개방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대립 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DDA협상 출범 후 첫 번째 회의가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되었고 전농은 60명의 투쟁단을 파견했다. 그리고 9월 10일 세계 각국의 농민 5000여명이 참가한 가운제 비아깜페시나는 ‘세계 농민 공동행동이 날’을 개최하였다. 그 과정에서 당시 57세인 이경해 열사가 멕시코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트 위에 올라가 ‘WTO Kills FARMERS’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왼쪽 가슴을 칼로 찔러 자결했다. 칸쿤 원정투쟁은 세계 농민이 함께 WTO가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투쟁이 되었으며 농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계 민중과 국제적 연대를 해야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홍콩에서 WTO 제6차 각료회의에 열림에 따라 농민과 진보단체를 중심으로 한국민중투쟁단이 구성되어 840여명의 투쟁단이 홍콩투쟁에 참가했다. 홍콩투쟁단은 전세계 농민이 처한 절박한 현실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도록 강력한 비폭력 평화투쟁을 국제연대를 통하여 진행하였다. 홍콩 투쟁단은 해상시위 및 삼배일보 투쟁을 진행했으며 결국 6차 각료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주요국 FTA 협상 진행과 결과]
(한·칠레 FTA)
WTO로 대변되는 다자간 무역협상이 150여 회원국간의 이견 조율에 난항을 겪자, 상대적으로 협상조율이 용이한 쌍무협정(FTA)과 지역협정(RTA)이라는 새로운 현태의 자유무역 협정으로 각개 돌파를 시도하게 된다.
한국정부 또한 이러한 국제적 양상 속에서 FTA를 추진하게 되는데, 그 첫 출발이 바로 한·칠레FTA였다. 1998년 11월에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칠레가 FTA 추진에 합의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협상이 시작되어 2002년 10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16차 협상에서 타결되었고, 2003년 2월에 정식 서명을 하였다. 이어 2004년 2월에 한국 국회에서 비준동의가 통과됨으로써 2004년 4월 1일부터 한국·칠레 FTA가 발효되었다.

한·칠레 FTA는 우리나라 최초의 FTA로 협상 전부터 농업인의 우려와 반대가 매우 컸다. 농업 부문 중에서도 특히 과수분야에 큰 피해가 예상되었다. FTA 비준 이전에 피해 농민들에게 대한 충분한 대책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정부는 ‘자동차와 휴대폰을 팔아 농산물을 사먹으면 된다’는 논리로 밀어부쳤다.
이에 농민들은 즉각적인 대응 투쟁을 조직하고 농민대회를 비롯 115일에 걸친 상경투쟁, 한강 고공시위, 차량시위등 결연한 투쟁을 진행했다. ᅟUR협정은 쌀이 의무도입량으로 들어오고 농산물도 상당부분 개방되었으나 농민들은 구체적인 체감이 부족했다. 그러나 한·칠레FTA는 구체적인 피해가 예측되면서 농민들은 전국농민연대를 세워 투쟁을 전개했으며 시군 단위에서도 농민 단체간 연대를 통하여 공동투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결국 2004년 국회에서 비준이 되면서 국내 농업은 더욱더 부정적 흐름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한·칠레FTA 이후 한·미. 한·EU, 한·중 FTA가 체결되면서 농업 말살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가속되었다.
(한·미 FTA)
2004년 초 한국은 미국에 FTA를 제안했고 2005년 1월부터 6개월간 한미 FTA체결을 위한 사전 실무점검회의를 가졌다. 이과정에서 미국은 광우병으로 유발된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30개월 미만), 스크린쿼터(40%를 20%로), 자동차 배기가스 유예연장(2년 연장), 의약품 수입장벽 철폐를 요구했고 한국정부는 이를 수락했다. 뒤이어 2006년 한미는 FTA협상 출범을 선언했고 각 국 국회 비준을 통과 후 2012년 3월 발효되었다.
협상 결과 농업분야는 네가지 내용으로 합의가 되었다. 첫째, 쌀과 그 관련 제품은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둘째, 쌀을 제외한 전 품목이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의 민감도에 따라 한국이 제시한 양허 계획에 합의했다. 셋째, 민간 품목에는 TRQ를 인정했다. 넸째, 민감 품목을 대상으로 수입량이 과대해 국내 농업에 피해를 줄 경우 수입 관세를 높이거나 수입량을 제안할 수 있는 농산물 세이프가드 조치(ASG)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역외가공지역 설치에 대한 별도 부속서를 채택하여 향후 개성공단 및 북한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산과 동일한 특혜관세를 부여받았다.


한미 FTA는 범국민과 함께하는 투쟁으로 진행되었다. 2006년 3월 발족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는 농민, 교수, 영화인, 여성, 학생 환경 및 노동단체 등 300여 단체로 구성이되었고 각 지역 마다 지역대책위를 꾸려 투쟁이 진행되었다. 특히 한미 FTA는 스크린쿼터 축소와 광우병 반대 촛불 시위와 겹쳐지면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한미FTA는 2012년 발효되었고 이후 FTA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농업계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단체들이 이탈하거나 느슨하게 이완되어 힘이 약화되어 갔다.
[농민투쟁의 의미]
농민들은 UR협정 이후 각종 FTA가 맺어지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때로는 힘겨운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는 국민의 일원으로서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었고, 역사적으로 유구한 농업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문화투쟁이었고,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환경투쟁이었고, 농촌을 지키고자하는 공동체 투쟁이었다. 비록 투쟁의 외연적 결과는 실패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 투쟁은 결과적으로 우리사회의 급진적 퇴행을 막아냈으며 우리사회의 민주화 이행에 내적 동력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농민 투쟁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예언적으로 보여준 투쟁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끝.
* 참고 자료*
* 한미FTA 양허 유형별 주요품목(2012년 발효)
| 양허유형 | 주요품목 |
| 양허제외 | 쌀 |
| 현행관세+TRQ | 오렌지,식용대두,식용감자,천연꿀 등 |
| 계절관세 | 포도,칩용감자 |
| 장기철폐 | 사과,배 |
| 정기철폐 ASG | 쇠고기,돼지고기(냉장),고추,마늘,인삼,보리,맺주맥 |
| 15년 | 호두,밤,잣,감귤,송이,표고 등 |
| 12년 | 닭고기,냉동양파,수박 |
| 10년 | 목숭아,감,단감,자두 |
| 9년 | 딸기 |
| 7년 | 맺주,살구,팝콘용옥수수 |
| 2014년 | 돼지고기 |
| 6년 | 옥수수,호두 |
| 5년 | 완두콩,냥동감자 |
| 3년 | 해조류 |
| 2년 | 아보카도,레몬 |
| 즉시철폐 | 화훼,커피,포도주,밀,채유용 대두,아몬드 |
* 한·EU FTA 양허 유형별 주요품목(2011년 발효)
| 양허유형 | 주요품목 |
| 양허제외 | 쌀 |
| 현행관세 | 감귤, 고추,마늘,양파,감자,흑설탕,대두,보리,인삼 |
| 현행+TRQ | 전탈지분유,연유,천연꿀 |
| 계절+TRQ | 오렌지 |
| 15년+TRQ | 치즈, 보리(맥아) |
| 12년+TRQ | 보조사료,변성전분 |
| 10년+TRQ | 버터,조제분유,유장 |
| 20년 | 사과,배 |
| 18년 | 참기름,참깨,땅콩,녹차,생강 등 |
| 16년 | 설탕(백) 등 |
| 15년 | 육우,젓소,쇠고기,계란,우유,표고,송이,주정,메밀,전분,녹두,녹용,대추,밤,잣,호두,키위,인삼 등 |
| 13년 | 닭고기,오리고기,난황,고구마,옥수수 등 |
| 12년 | 고사리,들기름,멜론,수박 등 |
| 10년 | 돼지고기,양고기,마요네즈,누륵,감,강낭콩,양배추,느타리,팽이,무,들깨,복숭아,완두콩,팥,녹두,바나나,올리브,김치,두부 등 |
| 7년 | 과일주스,쨈,맥주,밀,무화과,살구,죽순,칠면조 등 |
| 6년 | 돼지고지(냉동족 외),호두 등 |
| 5년 | 배추,양배추,양송이 등 |
| 3년 | 밀가루, 오렌지주스 등 |
| 2년 | 레몬, 자두, 아보카드 등 |
| 즉시철폐 | 홍차, 포두주, 코코넛,아몬드,파스타,식물성유지,자스민,올리브, 향신료 등 |